장 성 익 /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환경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흔히 ‘환경’이라 하면 숲, 산, 강, 바다, 들판 등과 같이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자연 생태계를 떠올린다. 그래서 ‘환경문제’라 하면 수질오염, 대기오염, 바다오염, 쓰레기 문제 등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환경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단순히 물이나 땅, 공기 등이 오염됐다는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환경은 자연 생태계를 넘어 이 지구와 우주 전체를 뜻한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 거대한 생명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동시에, 환경문제는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인 동시에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파괴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환경을 살리는 것은 단순히 자연 보전을 넘어 사람과 사회, 곧 이 세상 전체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환경문제 또는 환경위기의 겉모습만 볼 게 아니라 ‘구조’와 ‘본질’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최대 환경 현안으로 떠오른 미세먼지를 보라. 미세먼지는 주로 공장, 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건설 공사 현장 등에서 나온다. 어디서 나오는가? 석탄 화력발전소, 자동차, 생산시설 등을 가동하는 사업장, 건설 공사 현장 등이다. 공장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여 굴러가는 산업주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 기지다. 화력발전소는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화석연료 문명인 현대문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는 편리하고 안락한 삶과 더 빠른 속도를 숭배하는 현대적 생활양식의 압축판이다. 건설 공사는 마구잡이로 자연을 망가뜨리는 개발주의 문명의 첨병이다.
이 모두 지금의 지배적인 문명과 체제를 떠받치는 주요 기둥들이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문제가 되는 것도 결국은 중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오염물질 배출이 그만큼 크게 늘어난 탓이다. 요컨대, 미세먼지 재앙은 단순한 대기오염 문제가 아니라 그 구조와 본질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산업문명 그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환경정의’란 무엇인가?
환경문제는 인간의 문제이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환경문제에는 민주주의, 정의, 평등 등과 같은 소중한 사회적․정치적 가치가 아로새겨져 있다. 환경문제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싫어하는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거대 위험 시설인 원자력발전소는 어디에 들어서는가? 대체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또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는 누가 일으켰고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온난화의 주범은 온실가스를 펑펑 내뿜으며 산업화와 풍요를 먼저 이룩한 이른바 선진 산업국들이다. 반면에 온난화로 인한 고통과 피해를 가장 크게 당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그다지 배출한 적이 없는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이다.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투발루, 키리바시, 나우루 같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정의롭지 않고 공평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에도 어긋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환경정의’의 관점이다. 환경정의의 문제의식은 한마디로 환경보전의 혜택을 누리고 환경파괴의 피해를 나누는 일이 공정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층, 인종, 나라, 지역, 세대 사이 등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환경정의 운동은 환경운동과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 사회정의 운동,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자
환경위기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대한 원인은 크게 ‘구조’와 ‘개인’의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조’의 문제에서 핵심은 무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다.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 대량폐기 시스템이 이 체제를 지탱하는 토대다. ‘개인’ 차원에서 핵심은 물질의 풍요, 더 많은 소유와 소비, 더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끝없이 추구하는 낭비적 생활방식이다.
경제성장이란 한마디로 생산, 소비, 화폐 거래, 서비스 등을 비롯해 모든 경제활동이 늘어나는 걸 뜻한다. 물건이든 돈이든 뭐든 물질적인 것이 더 많아지고 커지는 것이 곧 경제성장의 실체다. 이런 경제성장을 무한대로 추구하며,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좋고 바람직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 지금의 지배적인 경제체제다.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GDP(국내총생산)다. GDP란 한 나라 안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모두 합친 것을 화폐 단위로 나타낸 것이다. 전적으로 생산 중심 개념이고, 그 기준은 화폐 가치다. 화폐로 측정할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의 총생산량을 양적으로만 계산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 결과 돈이 더 만들어지고 늘어나기만 하면 GDP는 올라가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된다. 그러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를테면 전쟁이 터지고, 환경 사고나 자동차 사고가 나고, 숲을 베어내고, 물이 오염되고, 태풍 같은 재난이 들이닥쳐도 GDP가 올라가고 경제는 성장한 것이 된다. 이 모든 경우에 생산이 이루어지고 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고 환경이 망가지고 사회가 병들어도 이 모두 GDP를 끌어올리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계산된다. 경제성장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제대로 알자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 많이들 알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궁금하게 여길 법한 사항들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는 다른 것인가?
지구 온난화란 사람들이 산업 활동이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 탓에 온실효과가 발생하고, 그 결과 지구 기온이 올라가서 더워지는 것을 말한다. 이 지구 온난화가 지구의 기후 시스템과 자연 질서를 교란, 파괴한 결과가 기후변화다. 곧 지구 온난화가 일으키는 것이 기후변화다. 참고로, ‘날씨’ 또는 ‘기상’이란 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기온, 바람, 비 등의 대기 상태를 말하며, ‘기후’는 수십 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는 통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후의 변동을 뜻한다.
– 1도도 안 되는 온도 상승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라는 기구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3년 동안(1880~2012년) 지구 평균 기온은 0.85도 상승했다. 자연은 본래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작은 변화에도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얼핏 별것 아닌 듯싶은 온도 변화만으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지구의 오늘날 평균 기온과 수만 년 전 빙하기 때 평균 기온의 차이가 불과 5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 지구 역사를 보면 과거에도 기후변화가 있지 않았나?
맞다. 과거에도 기후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변화와 두 가지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과거의 기후변화는 대부분 자연 활동의 결과, 곧 그냥 자연 현상이었다. 하지만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세기 이후의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산업 생산과 같은 경제활동, 화석연료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현대인의 일상생활 등)의 결과다. 그러므로 지금의 기후변화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환경 재앙’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옛날에 비해 지금의 기후변화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 ‘2도’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2015년에 파리 기후변화 협약의 핵심 내용은, 세계 모든 나라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1세기 말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훨씬 아래로 억제하고 최소한 1.5도를 넘지 않도록 국제적으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2도’를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지구 기온 상승 폭이 2도를 넘어서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기후 파국’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갖가지 기후변화의 재앙이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와 규모로 전 지구를 한꺼번에 덮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예측이다. 그래서 2도는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라 불리기도 한다.
– 기술적인 해결책은 없나?
최근 주목과 관심을 모으는 것은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대한 거대한 기술공학적 개입이다. ‘지구공학’ 또는 ‘기후공학’이라 불린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지구로 오는 태양빛을 막거나 반사시켜 지구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이산화탄소 흡수 작용을 인공적으로 활발하게 만들거나 별도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없앰으로써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비행기, 로켓, 대포, 풍선 등을 이용해 대기 중 일정 공간에 이산화황 같은 미세입자를 대량으로 살포하자는 아이디어를 꼽을 수 있다. 그렇게 퍼져나간 입자들이 지구로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함으로써 지구 온도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바다 위의 구름을 조작하는 방안도 있다. 바닷물을 뿜어내는 배를 띄워 바람의 힘을 이용해 수분을 하늘로 더 많이 공급하면 구름의 양이 늘어나 햇빛을 막게 될 거라는 아이디어다. 우주 공간에 거대한 반사체를 설치하자, 사막을 햇빛을 잘 반사하는 물질로 뒤덮자, 건물 지붕을 모두 흰색으로 칠하자 등과 같은 제안들도 나온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방안 가운데 대표적인 건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물질을 대량으로 뿌리자는 아이디어다. 그렇게 하면 바다 표면 가까이에서 광합성을 하는 플랑크톤이 아주 빠르게 증식하면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방안들이 국지적이고 일시적으로는 어느 정도 효험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는 실험실이 아니다. 이런 방안들은 첨단 공학 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지구 생태계와 기후의 특성을 대규모로 조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관계 속에서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대상으로 인위적인 거대 실험을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환경 피해나 치명적인 돌발 사태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술이 ‘금지된 장난’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하여
화석연료와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현실을 넘어 새로운 에너지의 길을 개척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대전제는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다(탈화석연료, 탈핵). 첫째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을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경제 시스템과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서로 맞물린 이 세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 체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에너지 전환’이라 부른다. 에너지 전환은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개념이다.
에너지 전환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지속가능성의 원칙이다.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보통사람들 다수의 참여다. 소수의 특정 세력이나 집단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에너지는 시민 모두의 것이다. 일반 시민, 지역 주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에너지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다. 자치와 분권도 중요하다. 대규모 집중에서 소규모 분산으로. 독점에서 자립으로. 에너지 민주주의의 기본 방향이 이것이다. 입니다. 독일의 헤르만 셰어는 ‘에너지 주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나눌지를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 같은 기존의 거대 권력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을 그저 따르는 게 아니라 말이다. 세 번째는 정의의 원칙이다. 세상에는 에너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아주 많다. 75억 명이 넘는 전 세계 인구 가운데 13억 명이 전기 에너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26억 명은 깨끗한 조리시설 없이 지내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에너지 양극화 현상도 심각하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차별이나 소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에너지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두루 포함하는 세상 전체의 변화와 깊이 맞물려 있다. 특히 에너지 전환의 핵심 원칙들은 불평등과 양극화 줄이기, 경제 시스템과 체질 바꾸기, 복지와 일자리 늘리기, 민주주의와 자치 드높이기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에너지를 바꾸는 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에너지 전환은 삶의 변화와도 직결된다. 기존 에너지 시스템 아래서 대다수 시민은 그저 수동적인 에너지 소비자나 이용자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에너지 전환과 함께 우리는 내가 쓰는 에너지가 지속가능성, 생태 위기, 사회정의, 민주주의, 공동체의 평화 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에너지를 더 절약하거나 보다 효율적으로 쓰려고 애를 쓴다. 집안에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수도 있다. 내가 직접 에너지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협동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 지역과 마을에서 에너지 전환을 실천할 수도 있다. 때로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자 하는 정치적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하는 것이 ‘에너지 시민’이다. 현명하고 윤리적인 소비자. 사회정의를 추구하며 정부 정책과 정치를 바꾸는 민주 시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 이 모든 것이 에너지 시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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